물류에서 배운 것: 모든 문제는 '갭'에서 시작된다
OR은 갭을 수치화하는 언어였다. 나는 이 언어로 AI를 설계한다.
계획은 완벽했다
2015년, 나는 대기업 물류 계열사에서 글로벌 기업의 배송 루트 최적화 프로젝트를 리드하고 있었다.
OR(운영연구) 방법론을 총동원했다. 배송 시간 30% 단축, 연료 비용 20% 절감, 차량 가동률 15% 향상. 이론상 완벽한 설계였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배송 시간은 10%밖에 줄지 않았고, 연료 비용도 5% 절감에 그쳤다. 차량 가동률은 변화 없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현실이라는 변수
우리의 최적 루트는 이런 가정 위에 세워져 있었다.
- 모든 기사님이 같은 속도로 운전한다
- 모든 차량의 성능이 동일하다
- 모든 도로가 계획대로 비어 있다
- 모든 고객이 정확히 집에 있다
현실은 달랐다. 베테랑 기사님은 지름길을 알고 있었고, 낡은 트럭은 언덕에서 느려졌고, 출퇴근 시간에는 도로가 막혔고, 고객은 종종 부재중이었다.
결정(최적 루트)과 행동(실제 배송) 사이에 갭이 있었다.
당시 우리는 이렇게 말했다. "현장이 계획을 안 따라서 문제야."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진짜 문제는 달랐다. 우리가 갭을 설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데이터가 가리키는 곳, 결정이 가는 곳
이듬해, 중국 상해 컨퍼런스. 대기업 물류 프로젝트 최종 PT였다.
기술적으로 완벽한 제안이었다. 물류 네트워크 최적화, 비용 절감 시뮬레이션, 시스템 통합 로드맵. 그런데 떨어졌다.
나중에 알게 된 이유는 "내부 정치"였다. 데이터는 A를 가리키는데, 회의실 분위기는 B로 흘러갔던 것이다.
판단은 있었지만, 다른 이유로 결정이 바뀌었다.
고객의 문제를 풀고 싶은데, 회사 울타리 안에서만 풀어야 한다. 해결하고 싶어도 회사에서 반대하면 끝이었다. 그래서 퇴사를 결심했다.
OR의 본질
물류학과에서 OR을 배울 때, 교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목적함수를 최적화하되, 제약조건을 만족시켜라."
나는 이게 수학 문제 푸는 방법인 줄 알았다. 하지만 10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됐다.
OR은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갭을 수치화하고 관리하는 언어였다.
- 목적함수 → 갭의 비용을 측정한다
- 제약조건 → 갭이 벌어지는 조건을 정의한다
- 최적화 → 갭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찾는다
- 휴리스틱 → 완벽하지 않아도 갭을 빠르게 줄이는 경험 규칙
이 도구를 손에 쥔 채, 나는 마케팅이라는 전혀 다른 세계로 들어갔다.
50개 클라이언트가 알려준 것
퇴사 후 마케팅 컨설팅 사업을 시작했다. 2018년부터 2024년까지, 50개 이상의 클라이언트와 일했다.
업종도 다르고, 규모도 다르고, 문제도 달랐다. 그런데 놀랍게도 모든 문제는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브랜드를 보호하면서 매출을 늘리자"는 의도가 있는데, 실행 팀은 클릭률만 극대화하는 자극적 광고를 집행한다. 클릭은 올라가지만 브랜드 평판은 떨어지고, 실제 매출도 줄어든다.
완벽한 콘텐츠 기획서가 나와도, 팀원마다 다르게 해석해서 제각각 실행한다. 일관성 없는 브랜드 메시지가 쏟아진다.
성과 분석을 하고 "실패 원인 3가지"를 정리해도, 6개월 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물류에서 본 갭과 근본적으로 같은 구조였다. 의도와 판단 사이, 판단과 결정 사이, 결정과 행동 사이, 행동과 결과 사이, 결과와 학습 사이. 어딘가에서 반드시 갭이 벌어지고, 그 갭이 문제의 원인이었다.
AI는 갭을 더 크게 만들 수 있다
2022년 11월 30일, ChatGPT가 나왔다. 나는 즉시 깨달았다.
"AI는 갭을 더 크게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AI에게 "클릭률을 높여라"고 지시하면 AI는 정확히 그 일을 한다. 클릭률은 50% 올라간다. 하지만 브랜드 평판은 30% 떨어지고, 고객 이탈률은 20% 올라간다.
AI가 틀린 게 아니다. "브랜드를 해치지 말라"는 의도를 판단 기준으로 번역하지 않았을 뿐이다.
AI가 판단을 망치는 것이 아니라, 갭이 판단을 망친다.
나는 AI를 설계하는 게 아니라, 갭을 설계한다.
모든 문제는 갭에서 시작된다
정부과제 심사장에서 떨어진 날 밤, 나는 생각했다. 왜 나는 설명하지 못했을까? 왜 좋은 기획이 나쁜 결과를 낳을까?
답은 하나였다.
물류로 갭을 배웠고, 마케팅으로 갭을 겪었으며, AI로 갭을 설계한다.
❌ "왜 실패했는가?"를 묻지 마라.
✅ "어디서 갭이 벌어졌는가?"를 물어라.
당신의 사업에서도, 프로젝트에서도, 팀 안에서도 갭은 존재한다. 문제는 그 갭을 보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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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Mind the Gap Chronicles | AI가 판단을 망치지 않게 설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