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단순하게 생각했다.
사람들이 흩어져서 말하는 것을 한데 모으고, 그것을 정리해서 남기면 된다. 그러면 ‘판단’도 자연스럽게 축적될 줄 알았다.
그런데 JudgmentOS를 만들면서 깨달았다.
메시지를 모으는 것과 판단을 남기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우리는 매일 여러 채널에서 대화를 한다. 메신저, 이메일, 회의록, 댓글, 문서.
데이터로만 보면 “수집”은 가능하다. 로그로 남기면 된다.
하지만 판단은 로그가 아니다.
판단은 무엇을 했는지가 아니라, 왜 그렇게 결정했는지, 그리고 그 결정이 앞으로 무엇을 바꾸는지까지 포함한다.
그래서 메시지를 모아도 판단이 남지 않는다. 판단을 남기려면, 메시지를 ‘판단화’해야 한다.
여기서 첫 번째 벽을 만난다.
판단에도 종류가 너무 많다.
예를 들어 이런 것들은 모두 “메시지”지만, 같은 판단으로 취급할 수 없다.
- 업무일정 공유
- 업무요청
- 단순공지
- 이미 완료된 건
- 진행중인 건
표면적으로는 한 줄의 텍스트인데, 의미는 다 다르다.
이 의미를 나누고, 범위를 설정하고, 어떤 것은 판단으로 올리고 어떤 것은 제외할지 정해야 한다.
그리고 두 번째 벽이 그 다음에 온다.
회사마다, 브랜드마다 ‘규칙’이 다르다.
같은 “요청”이라도 어떤 조직에서는 승인 체계가 핵심이고,
어떤 브랜드에서는 톤앤매너가 핵심이고,
어떤 팀에서는 법적 리스크가 핵심이다.
그래서 결국 “판단”을 만들려면, 조직마다 다른 언어를 해석하는 규칙이 필요하다.
나는 그 규칙을 온톨로지라고 부른다.
사례: 온톨로지는 왜 ‘비싼가’
예를 들어 치과(의료) 홈페이지 콘텐츠 발행 프로세스를 생각해보자.
겉으로는 “글 하나 발행”이지만, 메시지 흐름을 따라가면 판단이 섞여 있다.
- 누군가는 “이 주제로 글 써주세요”라고 말한다. 이것은 업무요청이다.
- 누군가는 “노션에 임시 저장해둘게요”라고 말한다. 이것은 진행 상태 업데이트다.
- 누군가는 “이 표현은 의료광고법 리스크가 있어요”라고 말한다. 이것은 법적 리스크 판단이다.
- 누군가는 “브랜드 톤이 너무 딱딱해요”라고 말한다. 이것은 브랜드 메시지 판단이다.
- 마지막으로 “이 버전으로 발행하자”가 나오면, 이것이 최종 승인 판단이다.
문제는, 이 모든 것이 채팅에서는 비슷한 형태의 문장으로 흘러간다는 점이다.
시스템이 이것을 ‘판단’으로 남기려면 최소한 아래가 필요해진다.
- 요청 / 공지 / 상태 / 승인 / 리스크 같은 의미 분류 규칙
- 누가 무엇을 할 권한이 있는지(책임자, 검토자 등) 역할 규칙
- 의료광고처럼 업종별로 바뀌는 금지 표현과 리스크 규칙
- 팀이 실제로 쓰는 단어(“발행”, “오픈”, “게시”, “업로드”)를 같은 의미로 매핑하는 규칙
결국 온톨로지는 “표준”이 아니라, 그 조직이 이미 사용하고 있는 언어를 규칙으로 번역하는 작업이다.
그래서 비싸다. 그리고 한 번 비싸게 만들면, 그때부터 축적이 가능해진다.
문제는, 온톨로지를 적용하는 순간부터 난이도가 급상승한다는 것이다.
추상화는 현실을 깔끔하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의 예외를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그 예외를 처리하기 위해, 시스템은 계속 복잡해진다.
세 번째 벽은 더 아이러니하다.
우리는 모델이 “더 정확한 판단”을 하길 원해서 컨텍스트를 더 넣는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컨텍스트가 과해지면서 과도한 판단이 나오기 시작한다.
한 마디로, 모델이 똑똑해지면서 “필요 이상으로 결론을 내리는” 순간이 생긴다.
조직 입장에서는 이게 위험하다.
판단을 돕는 시스템이, 판단을 대신해버리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여러 테스트를 하고 있다.
어떤 정보는 줄이고, 어떤 정보는 구조화하고, 어떤 규칙은 조직별로 분기시키고 있다.
메시지를 ‘판단’으로 바꾸는 과정은 결국, 기술 문제가 아니라 판단을 설계하는 문제라는 결론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래도 이상하게 확신이 있다.
이 문제들이 존재한다는 건, 뒤집어 말하면 이 문제를 풀었을 때 제품이 정말 빛날 지점이 명확하다는 뜻이니까.
판단을 객체로 남긴다는 건 단순한 기능이 아니다.
조직의 의사결정과 실행이 반복될수록 더 강해지는, 하나의 운영체제를 만드는 일이다.
그리고 지금 내가 가장 힘들어하는 지점이,
아마 JudgmentOS가 가장 가치 있어지는 지점일 것이다.